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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의 시작
명절이 끝나고 나흘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명절이 지나면 후유증으로 며칠 힘들었으나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고는 평소 육식보다는 채식위주로 소식을 하던 내가 연휴기간에는 엄청난 양의 고기위주의 식사를 했던 것이 떠오른다. 게다가 주변에 약간의 소음이 있어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편인데 여러 사람과 함께 있으니 잠도 잘 자지 못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기에 대한 생각이 아픈 몇일 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아픈 것이 연이어 먹었던 고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한순간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즈음 나는 고기와 멀어지고 있었다. 다큐를 매우 좋아하는 나는 지구나 환경에 대한 다큐, 여행, 사람 사는 것에 대한 다큐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것들을 두루 즐겨본다.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환경에 대한 다큐가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 넷플릭스의 <더 게임 체인저스>와 <음식이 나를 만든다:쌍둥이 실험>은 매우 인상 깊었다.
채식은 비단 나의 몸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 환경을 위해 꼭 필요한 식단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스테이크,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산림은 해체되고 그곳에 대규모 농장이 들어선다.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인 소에게는 위에서 메탄가스가 나온다. 처음에 소의 방귀가 메탄가스를 발생시킨다는 것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의 방귀 정도가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니,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은 육류를 엄청나게 소비한다. 그것도 잘 자라고 있는 산림에 불을 질러가며 엄청난 부지를 확보하여 인위적으로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스테이크 한 점을 얻기 위해 엄청난 환경 파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큰 결심도 하지 않은 채로 점심을 먹은 후 저녁 메뉴를 생각하듯,
아무런 저항없이 자연스레 채식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채식의 분류
채식은 어떤 음식까지 먹느냐에 따라 세부적으로 분류된다. 플렉시테리언이 가장 약한 단계의 채식이고 비건은 달걀, 치즈, 우유 등 동물로부터 나온 유제품까지 섭취하지 않는 가장 단호한 단계의 채식을 말한다.
채식의 단계는 생각보다 세분화되어 있다. 이는 참 반가운 일이다. 채식을 결심하고 가장 자신이 없었던 부분이 달걀과 치즈 부분이었다. 계란 프라이를 참 좋아하는 나로서는 계란 프라이, 계란말이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다. 치즈나 버터가 들어간 디저트를 못 먹는다는 것 또한 절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채식의 종류가 다양하니 내가 할 수 있는 단계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달걀과 우유까지 섭취하겠다면 자신을 락토 오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하면 된다.
플렉시테리언 < 폴로 <페스코 < 락토 오보 < 오보 <락토 <비건
플렉시테리언 | 채식을 실천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육식도 섭취 |
폴로 | 붉은 고기를 제외한 닭고기까지 섭취 |
페스코 | 해산물까지 섭취 |
락토 | 육식과 해산물 모두 섭취하지 않고 달걀과 우유까지 섭취 |
오보 | 육식과 해산물+우유까지 섭취하지 않고 달걀만 섭취 |
락토 | 육식과 해산물+계란까지 섭취하지 않고 우유만 섭취 |
비건 | 육식과 해산물+우유,계란까지 모든 동물성 원료는 섭취하지 않는 단계 |
비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나는 채식의 단계 중 해산물, 우유, 계란까지 모두 먹지 않는 비건을 2주째 하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 때문에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바빠서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오히려 당분간은 고마운 일이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고 집에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에 나에게 고기를 권할 사람이 없는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초등학교 중학년이 된 아이들은 함께 채식에 대한 다큐를 보고는 나보다 더 채식에 열성적인 목소리를 낸다. 저학년을 벗어나 제법 머리가 큰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먹을 것에 대한 것을 정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전에도 채식을 좋아하는 나의 식습관으로 인해 고기로부터의 단백질 대신 콩이나 두부로부터 단백질을 많이 섭취했다. 아이들이 두부, 특히 두부와 감자가 잔뜩 들어간 된장국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서의 채식은 문제 될 것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도 먹어야 하고, 아직은 여러가지 음식을 접할 수밖에 없는 나이이기에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한 소화력도 엄청나지 않은가? 나로서는 정말 고기를 소화하는 능력이 이전과 같지 않고 여러 가지 몸의 형편과 생각의 정리가 채식으로 결론이 지어졌지만 집안 구성원들은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학교 생활과 사회의 생활이 있으니 온전히 채식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로서도 약속이 생기고 여자들의 마법이 시작 되기 전 나를 괴롭히는 PMS의 시기가 찾아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시부모님 댁에 가서 정성스레 차려주신 고깃국을 거절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집에서 내 돈 내고 사는 것에 한해서는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고집할 것이다.